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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ipei Confucius Temple Confucian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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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ber 1.영성문、total 1 picture

등은 공사 재개를

대성전, 의문, 숭성사등 3대 전각과 동무, 서무가 완공된 뒤에, 모금에 차질이 생기며 재정적 곤란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민국 24년(1935년), 타이페이 지역 인사였던 황짠쥔, 꾸시엔롱씨 등은 공사 재개를 제기하며 모금을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재료를 구입하고 건축가를 초빙해 공사를 재개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원 건축가였던 왕이슌씨는 이미 취앤쩌우에서 세상을 떠난 뒤였기에, 나머지 공사는 타이완 건축가를 초빙해 완성하였다. 먼저 영성문(櫺星門)을 짓고, 다시 예문(禮門), 의로(義路), 횡문(黌門), 반궁(泮宮), 반지(泮池)와 만인궁장(萬仞宮牆)을 지었다. 민국 28년(1939년), 모든 공정은 끝났고, 현재의 웅장한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두 차례로 약 26만 타이완 달러를 모아, 총 면적 4168평, 건물 면적 약 1600평의 공자묘를 건설하였다.

몇 년 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일본인은 중국식 제전을 강제로 폐지시키며 예악은 모두 일본식 정국신사(靖國神社)의 신악 (神樂)으로 교체 사용하도록 명령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민국 34년(1945년) 타이완은 광복을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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