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
光緒5年
대북부(臺北府) 성을 건설하면서 바로 성 안의 남문 내에 문묘와 무묘를 건설하였다.
1881
光緒7年
대성전(大成殿), 의문(儀門), 숭성사(崇聖祠)를 완성하였다.
1892
光緒18年
푸지앤(福建)으로 사람을 파견해 제사용 물품을 구입하고, 예관(禮官)과 악사(樂師)를 타이페이로 초빙해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1907
民國前5年
일본인은 일어 학교를 세운다는 명목으로, 공자묘를 철거하고 그 곳에 제일고등여학교(第一高等女學校)를 세웠다.
1925
民國14年
2월 바로 ‘타이페이성묘건설준비위원회(臺北聖廟建設籌備處)'
3월, 따롱통 지역 인사인 천페이껀씨가 2천여 평을, 또 꾸시엔롱씨가 토지를 사들여 천여 평을, 또 모금액으로 천여 평을 매입하면서 약 5천 평의 공자묘 대지를 확보하였다.
辜顯榮 1927
民國16年
대성전의 상량식을 거행하였다.
왕이슌 1929
民國18年
대성전이 완성되었으며
第二代大成殿 1931
民國20年
에는 숭성사(崇聖祠), 의문, 동무(東廡), 서무(西廡) 등이 완공되었고, 새로 조각된 성현의 위패도 완성되었다.
8월27일 공자 탄강일에 30여 년동안 중단되었던 석전제가 다시 봉행되었다.
재정적 곤란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1935
民國24年
다시 재료를 구입하고 건축가를 초빙해 공사를 재개하였다.
1939
民國28年
먼저 영성문(櫺星門)을 짓고, 다시 예문(禮門), 의로(義路), 횡문(黌門), 반궁(泮宮), 반지(泮池)와 만인궁장(萬仞宮牆)을 지었다.
1940
民國29年(1940)
일본인은 중국식 제전을 강제로 폐지시키며 예악은 모두 일본식 정국신사(靖國神社)의 신악 (神樂)으로 교체 사용하도록 명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