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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ipei Confucius Temple Confucian Culture

의문

의문은 ‘대성문(大成門)’이라고도 불리며,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주요 입구다. 의문의 5간(間) 면적으로, 취푸(曲阜)의 공자묘와 마찬가지로, 좌우 양쪽에 문을 달았는데, 왼 쪽은 ‘금성문(金聲門), 오른 쪽은 ‘옥진문(玉振門)’이다.

의문의 앞 입구도 돌기둥을 놓았지만, 용을 새겨 넣지 않은 매우 소박한 형태이다. 의문의 담 위에는 고아한 색의 교지 도자기 장식이 있는데, 꼼꼼히 감상해 보도록 한다. 그 중 중문 양쪽의 목조 조각인 ‘지룡단로(螭龍圍爐)’ 창문이 가장 특색 있는데, ‘지룡’이란 용의 아홉 아들 중 하나이며, 뿔은 없고, 옛날 건축이나 가구에 조각의 소재로 쓰였다. ‘지룡단로’는 여러 쌍의 용이 향로를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선이 화려하고 형식에 막힘이 없다. 그 조각솜씨는 매우 뛰어나 걸작으로 꼽힌다.

의문 안으로 들어서면, 양 쪽에 석전제용 악기인 용종(鏞鐘)과 진고(晉鼓)가 놓여 있다. 중국 고대 건축 중 어떤 곳은 가구의 목조 형식을 감상할 수 있게 일부러 천정을 만들지 않는데, 이를 ‘노명조(露明造)’라 한다. 가구는 역학 원리에 맞아야 하는 역할 외에, 미학적 가치를 위해 조각을 넣기도 한다. 의문의 가구는 말뚝 3개와 들보 2개를 이용한 ‘이통삼과(二通三瓜)’식을 사용한다. 말뚝은 외 모양으로, 수각(鬚脚)도 있어 아래로 대들보를 감싸고 있다. 이런 구조는 결합성이 강하여, 지진에 매우 강해 큰 지진이 많은 타이페이에 매우 적합한 형식이다.

의문의 가구에는 좌우의 세부 조각이 같지 않다는 또다른 특색이 있다. 옛날에는 집을 지을 때 항상 두 명의 건축가를 초빙하여, 각기 좌우의 조각을 책임지게 하였다 하는데, 조각의 크기는 같지만, 그 도안은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었다. 1930년, 타이페이시 공자묘의 의문을 시공할 때, 설계자인 왕이슌(王益順)씨도 두 명의 목조 공예가를 초빙해 좌우 양쪽을 제작하게 하여, 오늘날 좌우를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 다른 특색을 엿볼 수 있다.

의문 원거리의사진
의문 원거리의사진
의문 정면
의문 정면
의문 글씨
의문 글씨
의문 현판
의문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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