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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ipei Confucius Temple Confucian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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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ber 1.일생、total 1 picture

현행 석전제의 제정

한대부터 취푸(曲阜) 혹은 중앙 정부 및 지방에서는 모두 보편적으로 공자의 제사를 모셨고 그에 따른 의례도 정했다. 시대가 흐르며 공자는 한 평제(平帝) 원시(元始) 원년(서기 원년)에는 ‘선니공(宣尼公)’으로 칭송되었다가, 당 현종(玄宗) 개원(開元) 27년(739년)에는 ‘문선왕(文宣王)’의 시호가 내려졌다. 제사 또한 더욱 성대하고 완벽해졌다.
그 후, 공자의 제사 봉행 시, 공자의 제자 및 기타 유학자들도 배향하게 되면서, 배향 선현들도 함께 제사를 지냈다. 공자의 제사 의식을 ‘정헌례’, 배향 선현의 제사를 ‘분헌례’라 한다.
중화민국이 건국된 후, 시국이 어지러워지자, 각지의 공자 제사는 매년 열리지도 못했고, 이전처럼 절차도 정하지 못했다. 1968년에서야 교육부는 비로서 전 총통 장개석의 지시를 받아, 내정부(內政部)등 관련 부서를 소집하고, 학자와 전문가를 초빙하여, 쟝푸총(蔣復璁) 선생이 위원장을 맡아 ‘제공예악공작위원회(祭孔禮樂工作委員會)’를 조직하였다. 아울러 각각 의례, 복식, 악무, 제기 등 4부분의 연구 팀을 만들어, 팡하오(方豪), 왕위칭(王宇清), 쭈왕번리(莊本立), 콩더청(孔德成) 선생 등 네 분을 각 팀의 팀장으로 임명하여 연구 및 기획 작업을 진행하였다. 우선 대성지성선사인 공자의 석전제 의례를 정한 후, 같은 해에 타이페이시 공자묘에서 시범적으로 행하였다가, 다시 2년간의 연구 수정 작업을 거쳐, 1970년에 드디어 완성, 내정부(內政部, 한국의 내무부)가 공표함으로써 실시하게 되었다.
하지만 제사의 진행 시간이 85분에서 90분을 소요하는 등 지나치게 길어, 타이페이시 공자묘 관리위원회는 내정부의 동의를 얻어, 1975년부터 약간의 수정을 시작해, 1976년에 2 번의 시험을 거쳐, 의식은 60분 안에 끝마치게 되었다. 그 후 각계의 반응이 좋아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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